시작에 앞서
매년 회고록은 연초에 써보려고 하는데, 이번엔 벌써 2월이 됐다. 1월 첫 주에 회고록을 쓰려고 하긴 했다. ㅎㅎ
연말 연초에 많은 일이 있어서 늦었다.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계절학기를 들었다. (드디어 교양필수를 마무리했다.)
계절이 끝나고 여유가 생길 때 쯤 크진 않지만 피해를 받는 일이 생겨서 고소라는걸 했다. 증거도 모으고 경찰서도 가고 그랬다. 수사관님이 배정되서 다음주에 조사를 받으러 가는데 정말 흥미진진하다. 이 일이 한동안 마음 속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다. 회고록이 늦어진 이유다. 처음으로 경찰서를 내 발로 가고 여러군데 전화를 돌리고 녹음도 잘하고 그런 미래에 도움될 경험을 해봤다.
연말에 여자친구가 퇴사를 한 덕(?)에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명절이 길다보니 본가에 내려가서 정말 많은 친구들을 봤다. 초중고시절 친구들도 보고 군대 친구도 한명 보고 그랬다. 다들 어른이 됐다고 느끼기도 하고 여전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그렇다.
이 회고록은 지각해서 지금 쓰지만 일단 24년에 쓴다고 가정하고 쓰겠다.
1월부터 틈틈히 적다보니 글감이 계속 생각나는 바람에 욕심을 덜어내지 못해 분량이 길어졌지만 내 회고록이다.
행복 찾기
23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족들이 흩어지면서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돌아봤다. 나한테 할머니는 고향같은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는 같이 살았고 이후엔 분가해서 근처 아파트에 살았다. 그래서 그 동네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고 할머니는 엄마아빠와는 다른 부모님이었다.
돌아가시고 현타가 쎄게 왔다. 그 전까지는 내가 하고싶은 것들에 대한 욕심,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하는 욕심, 그리고 그걸 위한 희생이 당장의 행복보다 더 중요했다. 그런데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욕심만 찾기엔 나도 20대 후반이 되면서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부모님은 더 이상 젊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를 돌아보면 나는 더 행복해지려고 했다. 큰 행복이든 소소하고 작은 행복이든 좋았다. 뭔가를 하고 싶을 때는 욕심보다는 성취감이나 행복감이 주는가가 조금 더 중요했다.
2024년의 목표와 부검
24년의 목표는 크게 3가지였다.
1. 시스템, 환경 만들기
나는 나를 믿지 않는 편이라 자율이 아닌 반 강제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루틴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시작은 굉장히 좋았다. 캘린더, 투두리스트에 일정을 일단 박고 그 일정에 맞는 생활을 했다. 하루를 예측하고 일주일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매일, 주간 회고를 하며 피드백을 했다.
방학에는 10권을 넘는 책을 읽고 정리할 수 있었고 친구도 많이 만나고 운동도 했다.
1학기가 시작되면서 루틴하지 못한 학과 커리큘럼에 시달리며 조금씩 멀어졌다. 여름방학때 다시 루틴을 주워담았고 2학기에 다시 멀어졌다. 변명아닌 변명이지만 건축설계 수업은 루틴한 삶을 방해한 일등 공신이었다. 마감 기간에 주어지는 무리한 요구는 잠을 줄이고 루틴한 삶을 깨부수며 해결해야했다. 2학기에는 팀플 과제가 총 4가지 있었다. 방학기간에 다져놓은 시간관리를 빙자한 캘박(캘린더 알박기) 덕에 씅에 차진 않더라도 아무튼 과제물을 낼 수 있었다.
건축학과라는 특성상, 그리고 특히 건축설계 수업 특성상 건축에 매몰된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개발 친화적인 환경에 들어가고자 했고 1년 내내 교내 개발 학회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했다. 이런저런 행사나 프로그램도 많이 참여하고 기획도 꽤나 하고 그랬다. 개발에 관심있는 건강한 사람들, 건강한 마음은 나름 전염이 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2. 영향력 키우기
영향력이라고 해서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건 아니다. 개발하는 여러 사람들과 친해지고 지식을 공유하고 공유받고 싶었다.
기왕 학교에 돌아온 김에 개발 학회에 들어가고자 했는데 선택의 기준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큰 요소는 규모와 네트워크였다.
지금 내가 운영진으로 활동하는 홍대 컴퓨터공학과 학회인 GDG on Campus Hongik(구 GDSC Hongik)은 300명이 넘는 홍대 컴공 최대 규모학회다. Google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이뤄지는 집단이며 다른 학교에서도 GDSC가 있고. 지역별로 현업자로 이뤄진 GDG가 있었다. 구글이라는 이름 아래에 네트워킹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었다.
들어가자마자 개총을 참여하고 운영진 공고가 나와서 지원했다. 지원할만한 팀으로는 교육팀과 DevRel팀, 개발팀이 있었는데 작년에 개발 많이 했으니까 지식공유를 많이할 것 같아서 교육팀을 지원했고 어쩌다보니 DevRel팀이 됐다. (?) 기왕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한 학기 뒤에는 팀장도 됐다.
나름 세미나 발표도 해보고 8주 동안 프론트엔드 멘토로 강의도 했다. 프로젝트도 하면서 못보던 사람들도 보고, 타학교와의 세미나 겸 친목으로 대화도 했다. 그동안의 내 생각을 정리할 기회이자 다른 사람들의 인사이트를 알아가는 기회가 된 것 같다.
3. 용돈 벌이
먼저 결론을 이야기하면 실패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내 앞가림을 조금 더 하고 싶어서 생각한 목표였다.
학회에서 프론트엔드 스터디 멘토 활동을 하며 강의를 했고 소정의 강의료(?)를 받았다. 책 리뷰나 서포터즈 활동, 인터뷰(?) 등등을 통해 네이버 페이나 이런저런 이모티콘, 책을 받으며 삶의 질을 올렸다. 23년보다는 조금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소마 엑스퍼트 활동을 하면 소정의 활동비를 주기에 신청했었고 떨어졌다.
정규 알바를 하긴 애매해서 쿠팡 알바를 지원했었던 기억도 난다. 토익 알바도 지원하고 그랬는데 진짜 더럽게 안뽑혔다. 공략법이 따로 있는걸까? 어느순간부터 확인도 안하고 지원도 안했다.
생각해보면 절실하지 않았고 게을렀다. 그리고 뚜렷한 목표가 아니라 용돈 벌기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하고 접근한 것도 큰 것 같다. 앗싸리 한달에 N만원 부수입 만들기 같은 생각을 했으면 조금 더 구체적인 접근을 했을 것 같다.
2024 마일스톤
올해는 학회(동아리) 활동과 학업이 메인이 됐다. 학회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건강한 학회원들 덕에 마인드가 조금 더 건강해진 것 같다. 20대 초중반 아이들이 나랑 놀아줬다는건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까?
GDG on Campus Hongik (구 GDSC Hongik)
처음으로 놀지 않는 학회에 들어갔다. 데브렐 팀원이 됐고 다음 학기에는 팀장이 됐다. 개발이 아닌 팀을 운영하고 여러 변수를 고민해보는 좋은 일들이었다. 학회에서 하는 프로젝트 트랙에서 프론트엔드로 참여했다. 간만에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발적인 성장은 잘 모르겠고 일단 팀 매니징에 대해서는 한 단계 올라선 느낌을 받았다. 예전보다 능숙한 느낌도 든다. 국비, 소마때의 팀과는 또 다른 구성원 마음가짐을 보며 흥미로웠다.
기초 프론트엔드 스터디의 멘토로 투입되어 8주동안 프로그래밍 초보자에게 HTML, CSS, JS, React를 찍먹시키는 강의를 했다. 정확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많지 않은 분량으로 강의하기 위해서 공부했고 더 프론트엔드의 근본적인 내용을 찾아보며 더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멘티들이 흥미를 느끼고 잘 따라올 때 진짜 기분이 좋았다. (기초프 멘토 회고록도 쓰고 있다.)
10월이 지나갈 때 학회에 있는 개발팀 Wow Developers에 들어갔다. 사실 아쉽다. 작년 연말까지는 일단 내가 바빴다. 세팅이나 개발 방식이 정말 현업스럽다(?)는 느낌이 있어서 다른 분들의 코드를 보며 많은걸 배웠다. 그래서 더 아쉬운 느낌... 진짜 아쉽다.
건축학과 살아남기 - 그런데 사이드 프로젝트
팀플의 늪을 빠져나왔다. 이번 학기 팀플 과제는 총 4개였다. 뭐어때. 어케든 해냈다. 이제 내 학교 생활에 팀플은 없다. ㅅㄱ
이번 학기 건축설계수업의 주제가 '2036 서울 올림픽을 연다면?' 이었다.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 뭘 해야하는 지 생각하는 과제였는데, 거기에서 생각했던 것 중에서 흥미로웠던 것이 티켓이라는 물리적인 물건의 한계였다. 티켓은 암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때때로 의미있는 경기는 싸인까지 받으며 액자에 넣기도 한다. 티켓을 사고 경기를 보면 끝난다는 한계점을 해결하고자 했다. 2036년에 구글 글래스같은걸로 현장을 촬영하면 장소의 영상을 처리해서 3D 공간으로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3D + 영상을 보여주는 플랫폼을 만든다면 티켓에 영속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이벤트성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프로젝트 Olym-Tick. 아픈 손가락이다.
영상을 3D로 만드는 MfS 기술을 공부하고 3D에 메터리얼을 입히는 그런 과정을 ChatGPT와 함께 도전했고, 그 3D를 웹 페이지에서 보여주기 위해 three.js를 공부해서 써먹어 봤다.
그런데 다 떠나서 그냥 쌩 영상만으로도 컴퓨팅 파워가 너무 떨어져서 연산처리가 오래걸렸다. 노트북으로 하루종일 2분짜리 영상을 돌렸는데 맘에 들지 않는 3D 모델링이 나왔던 것 같다. AI를 공부해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내려놨다. 기획, 디자인, 백엔드, 프론트를 전부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 진짜 복잡도가 너무 높아졌다. 기능이 많지도 않았는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1인 개발 진짜 어렵다.
2024년의 좋았던 점과 안좋았던 점
좋았던 점
일단 전보다 행복해졌다. 1학기때는 조금 심신미약이 있어서 학교도 잘 안가고 그랬다. 딱 수료를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작업을 했던 시기도 있었다. 책도 편식해서 보고 재미없으면 덮고 다른 책보고 그러는 금쪽이 느낌?
건강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전염이 된 것 같다. 건강한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예전보다 성격에서 뾰족함이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해심도 많아진 것 같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서 내가 뭐해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했다.
정말 개발이 좋은건지 건축 그냥 해도 되는건지? 그런 미래에 대해서 생각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개발이 좋아서 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왜 하고 있는지도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생각들을 요약해서 학회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세미나를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이다. 건강한 영향을 준 학회에게 뭔가 돌려준게 있으니 됐다.
안좋았던 점과 고쳐보기
먼저 행복을 찾는다는 명목하에 편식을 했다. 해야하는 일들은 최소한으로 하고 재미없으면 좀 대충대충 지나가려는 경향이 갈수록 늘었다. 도파민 드리븐한 선택을 하다보니 더 ADHD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렇다. 졸업까지 좀 남아서 즐겼다. 막상 내가 학교 생활을 즐긴 시간이 짧았으니까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젠 졸업반이니까 재미없는걸 할 차례다. 아쉽지 않을 것 같다. 취준을 본격적으로 하는 25년에 재미없는 일들을 해야하는데, 이 노잼이 나중에 빅재미로 돌아올 것 같다. 빅재미를 위해 참으면 도파민이 더 나오지 않을까?
두번째로는 올해는 개발적인 성장을 이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학과 작업, 학회 활동은 나름대로 했고 프로젝트도 했지만 개발적으로 성장했냐고 보면 탄탄해진 부분도 있고 새로운 공부도 했지만 큰 폭의 성장을 경험하지 않았다. 조금 건방졌던 것도 같다. 개발보다 다른 떡밥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 혼자 책보면서 놀고 한량같기도 하고 그렇다. 이젠 개발 능력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근본적인 원리나 CS 지식까지도 빨아들여야 취직도 되고 빅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공부 좀 해야지.
2025년의 목표
매년 회고록을 보다보면 해마다 내 지향점이 다르다.
22년에는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모습이 보였다.
23년에는 성취감에 목을 매곤 했다.
24년에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았다.
25년은 이제 증명해야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삶의 막이 있다면 '대학생 소울치킨'이라는 대단원의 엔딩을 보고 다음 막을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빌드업, 떡밥을 만들 시기다.
목표는 크게 3가지다. 완전한 건축학과 졸업, 개발자 취업, 건강한 몸 상태 만들기
10년의 숙원 건축학과 졸업이 다가온다. 드디어 졸업반이 된다. 졸업전시, 졸업논문. 딱 대. 혼쭐나는건 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대. 장판파의 장비의 마음 가짐. 한신의 배수진. 나는 날아가는 새, 뒤를 돌아보지않아...
사실 건축 툴을 다루는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긴 했다. 그렇지만 별수있나. 이제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엔딩보고 갈 것이다. 시간표가 널널하다보니 졸전은 하루에 딱 6시간만 때려박을 생각이다. 루틴한 삶을 만들어보자.
난 개발을 할거다. 딴 일을 하는 미래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좀 개발적인 성장을 더 해보고 취직도 해보고 오랫동안 개발할 몸상태도 만들려고 한다. 재미없어보여도 재미있어보여도 꾸준하게 해볼 생각이다. 그런데 오히려 더 재밌을 것 같다. 매번 대규모 미션 느낌이었다면 이제 일일퀘스트를 한다는 느낌? 일퀘 오히려 좋아.
2024년 잘가고 2025년 어서오고
작년과 비슷하게 올해도 진짜 감사한 일, 감사한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 덕에 나도 재밌게 살았던 것 같다.
나를 응원해준 여자친구, 가족이 있다. 나라는 이유만으로 응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업계에서 방구 좀 뀌는 학교의 건축학과를 내려놓고 컴퓨터 같은거(?) 두들기겠다고 했을 때 응원한 사람은 몇 없다. 내가 좋아도 일단 걱정부터 하고 봤다. 그래서 그런가 신년엔 여전히 발전하는 엄마의 도전, 여자친구의 새롭게 시작할 커리어까지도 내가 받았던대로 응원한다.
어떻게 보면 사회인이 되지 못하고 대학생으로 살고 있는데 나랑 잘 놀아주고 밥도 사주는 좋은 친구들도 있다. 어떻게 보면 어색하게 대할 수 있는데 딱히 그렇지 않다. 집, 차, 돈, 결혼 같은 얘기가 슬금슬금하는 나이가 됐다. 그래서 얘기를 못끼지 않을지, 애들도 내가 불편해지지 않을지 불안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정신연령이 비슷해서 문제가 안됐다. 대학생인 나 앞에서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거 보면 다행이다 싶다.
자주 못봤지만 성장을 같이 했던 국비지원 때의 동료들, 소마때 친구들도 존재만으로 든든하다. 가끔 이야기를 나눠도 좋은 친구들이다. 각자의 커리어를 들으면 진짜 재밌고 멋있다. 누구 결혼식때나 다 모일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내 뒷배들이다.
개발 학회에서 여러 사람들을 보며 동기부여도 많이 됐다. 다들 나보다 어리지만 배울 점이 있다. 난 저 나이때 저런 고민, 저런 생활을 못했던 것 같다. 건실한 청년들... 팀장이랍시고 리스펙해주고 알량하게 몇년 더 살았다고 꼰대짓 했을텐데 같이 있을 수 있다는게 감동이다. 나름대로의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데 다들 잘 됐으면 좋겠다.
매년 엄마가 하는 말이 있다. "올해만 버티자."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매년 버티다가 끝났다. 버티기만 하다가 죽것다. 그래서 올해는 "올해부터 잘돼보자." 를 하자고 했다. 올해부터는 잘될 생각이다.
아무튼 벌써 2025년이 되었다. 어쩌다보니 서른이 됐는데, 만나이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대학 졸업 기념, 30살 기념으로 20대 회고록을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내가 어렸을 때 생각한 서른살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어디가서 짜치는 서른으로 보이지 않기위해 올해를 빡시게 살아보고 잘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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